크레존 이야기
이송교 <홍익대학교 기초과학과>
20년 전,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라는 파격적인 책을 출간해 돌풍을 일으켰다. 책에서 커즈와일은 노화와 죽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극복해야 할 문제로 여기며,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생물학적 한계를 뛰고 영생에 이르는 인류의 미래를 그린다. 이 책이 나온 이후 대중에게도 '특이점'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chatGPT를 필두로 인공지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다시 이 책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자,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책장을 넘기게 된 것이다. 과연 특이점이란 무엇일까? 특이점이 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사진: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
원래 특이점은 수학 용어다. 어떤 수학적인 대상이 정의되지 않는 지점, 다시 말해 값이 무한대로 발산해 버리거나 하는 지점을 뜻한다. 예를 들어 “y=1/x”라는 수식을 살펴보자. x의 값이 1이면 y의 값도 1이다. x가 1/2이면 y는 2다. x가 1/3이면 y는 3이다. x가 작아질수록 y는 커진다. x가 엄청나게 작아지면, 그만큼 y는 엄청나게 커진다. x가 1/100,000,000이면 y는 100,000,000이다. x가 점점 더 작아져서 결국 0이 되면 어떻게 될까?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면 무한대가 된다. 즉 y는 무한대로 발산한다. 이렇게 y=1/x식의 x=0 지점처럼, 값이 발산하는 지점이 바로 특이점이다.
천체물리에도 특이점이 있다. 블랙홀 내부에 있는 중력 특이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우리 우주의 시공간(시간과 공간)을 휘게 한다. 질량이 큰 물질일수록 시공간을 더 많이 휘게 한다. 그래서 질량이 큰 천체가 있으면, 그 주변을 지나가던 물질들이 휘어진 시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구도 태양이 휘게 한 시공간 안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만약 태양이 없어진다면, 지구는 휘지 않은 평평한 시공간을 그냥 직진할 것이다. 블랙홀은 질량이 어마어마하게 큰 천체이기 때문에 시공간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휘어지게 한다. 가장 간단하게 생긴 블랙홀을 보면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부분과 ‘특이점’이라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윤하의 노래로도 유명해진 사건의 지평선은 물질이 한번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를 뜻한다. 이 지평선을 기준으로 블랙홀의 크기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블랙홀의 중앙에는 바로 부피가 거의 0이라 시공간의 곡률과 밀도가 무한대가 되는 특이점이 있다.
[사진: 수학에서의 특이점(왼쪽)과 천체물리에서의 특이점(오른쪽)]
마지막으로 커즈와일이 언급하면서 유명해진 특이점이 바로 ‘기술적 특이점’이다. 미래에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력이 엄청나게 막강해지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는 시점을 뜻한다. 커즈와일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지능은 선형적으로 발달하는 데 비해 기계의 지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한다. 선형적 증가와 기하급수적 증가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만약 지금 우리의 지능이 1이고 앞으로 1년에 1씩 선형적으로 증가한다고 하자. 그러면 해마다 1, 2, 3, 4, 5 이런 식으로 증가하므로, 10년 뒤에는 11배가 된다. 한편 기계의 지능도 1이지만, 1년에 2배씩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하자. 그러면 해마다 1, 2, 4, 8, 16 이런 식으로 증가하므로, 10년 뒤에는 지금의 1,024배가 된다. 사람의 지능이 11배 증가할 동안 인공지능은 1,024배 증가하는 거다. 그리고 이러한 발달 속도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심하게 벌어진다. 지금 당장은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능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사람이 기계에 따라잡히는 건 시간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지능을 기계의 지능이 추월하는 지점이 바로 특이점이 도래하는 시기다(커즈와일은 이를 2045년으로 예상한다).
[사진: 커즈와일은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사람의 지능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공 지능이 추월하는 시점에 특이점이 도래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일단 비전문가로서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인공지능(AI),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개념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먼저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니지만 지능을 갖춘 모든 컴퓨터 시스템을 아우른다. 넓은 의미에서 사람 대신 기계가 하는 모든 자동화가 인공지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머신러닝은 인공지능의 한 분야다. 한국어로 ‘기계학습’이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계가 스스로 학습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이 데이터를 주면, 기계가 학습 모형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위한 패턴을 알아서 학습한다. 알고리즘을 일일이 설정할 필요가 없는 거다. 마지막으로 딥러닝은 머신러닝의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다. 사람의 뇌 속에는 신경 세포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작동하고 있는데, 이러한 뇌의 작동 원리를 차용하면 기계도 사람처럼 고차원적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람의 뇌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그 신경망에서 입력층과 출력층 사이에 숨겨져 있는 은닉층이라는 걸 여러 층으로 깊게 쌓아 학습 능력을 높인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딥러닝이 기계를 학습시키는 데 있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최근 10여 년간 인공지능이 획기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다. 현재 거의 모든 인공지능은 딥러닝 방식을 사용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공 지능, 머신러닝, 딥러닝의 차이]
[사진: 인류는 초인간, 나아가 탈인간으로 진화하게 될까?]
레이 커즈와일의 주장은 극단적인 면이 있고 논란의 여지도 많지만,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보면 앞으로 인류의 삶이 예측할 수 없이 격변할 거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chatGPT는 출시한 지 1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바꿔 놓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전문가가 chatGPT처럼 특정한 일만 수행하는 AI를 넘어서, 모든 일을 진짜 사람처럼 수행하는 AGI(인공일반지능 또는 범용 인공지능)가 5년 안에 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앞으로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또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것이다. 특이점이라고 부를 만한 시점이 정말로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기술 분야는 잘 모른다고 무조건 눈과 귀를 막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기술 동향을 따라가며 지금부터 미리 대비해야 한다.
<출처>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지식프레임, 2020
* 웹사이트:
https://ko.wikipedia.org/wiki/%EA%B3%B1%EC%85%88_%EC%97%AD%EC%9B%90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10131/7642099/1
https://medium.com/geekculture/on-singularity-hybrid-intelligence-and-trans-human-4ebf817fa9c6
https://blogs.nvidia.com/blog/whats-difference-artificial-intelligence-machine-learning-deep-learning-ai/
https://horizon.kias.re.kr/13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