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존 이야기
“이제 그만 놀고 공부해야지?”
필자가 학창 시절 많이 듣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난 무언가에 몰입해서 즐겁게 지내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물론, 뭔가 하면 안 되는 나쁜 행동을 했고 그에 대한 질타를 받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세월이 적지 않게 흘렀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똑같은 지적을 합니다. 충고 섞인 타이름이지만 반갑지 않은 잔소리를 환영할 학생은 없을 것 같습니다.
발상의 전환으로 시작하는 디자인 싱킹 전략은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에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놀이는 공부의 반대말일까?’ 배움과 깨달음이 항상 교실이나 연구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자주 증명되었습니다. 놀이 속에서 다양한 학습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습득한 지식은 백 번씩 쓰면서 외웠던 영어 단어보다 오랫동안 기억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의 Lori Brenneise 선생님도 이처럼 모든 순간, 어떤 장소에서든 배움이 일어난다는 생각으로 20여 년간 초등학교 교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종이비행기 프로젝트(The paper airplane project)’ 또한 그녀의 이러한 교육 철학과 디자인 싱킹 전략을 기반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놀이와 공부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Lori 선생님의 종이비행기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종이비행기 날리기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즐기는 인기 놀이 종목 중 하나입니다.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만든 종이비행기가 더 멀리 더 높이 또 더 오래 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종이를 이렇게 저렇게 접어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Lori 선생님은 학생들의 집중도를 끌어내며 그들에게 과학, 기술, 공학과 수학이 융합한 학습 콘텐츠(STEM –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를 제공할 아이디어로 ‘종이비행기 프로젝트’를 착안합니다.
(출처 : 이미지 투데이 http://www.imagetoday.co.kr)
프로젝트의 시작은 디자인 싱킹 프로세스의 도입 단계인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합니다. 학생들은 각자 실제 시장이 편성하고 있는 국제 항공편의 비행 거리와 시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해당 항공편의 티켓 가격도 알아봅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중동 카타르까지의 항공편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으로 미션이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항공권이 상당히 고가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합니다.
학생들은 각자 조사한 비행시간과 거리에 대한 정보를 기초로 해당 항공편에 드는 연료의 양과 비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관련 자료를 조사합니다. 값비싼 항공권의 상당 부분이 연료비와 연계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연료량을 줄일 방법은 없는지, 연료 가격을 낮출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 각자의 비판적인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항공권의 높은 가격으로 빚어지는 소비자들의 고충을 학생들 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연료량과 비용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레 ‘연비’의 개념에 대한 이해로 이어집니다. 학생들의 대화가 이 단계까지 진행이 되면 Lori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처럼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행 경비라는 경제적인 제약 때문에 많이들 고민하지요. 특히 고가의 항공권이 여행 경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여러분이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과 같이 값비싼 항공권의 주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연료비입니다. 연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을 발견한다면 지금보다 해외여행의 문턱은 훨씬 낮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연료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출처 : 이미지 투데이 http://www.imagetoday.co.kr)
학생들은 높은 연비를 고려한 비행기 만들기에 대해 고민하고, 이러한 고민은 물리학에서 다루어지는 여러 개념에 대한 이해와 활용으로 이어집니다. 학생들은 우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비행기가 어떤 원리로 날아가는지에 대한 정보를 습득합니다. 각자가 검색한 결과를 들고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양력, 추력, 항력, 중력의 개념을 접합니다. 이 네 가지 힘을 다이어그램에 표시하고 이 힘들이 비행기가 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비행기의 구조를 바탕으로 네 가지 힘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은 “비행기의 엔진은 어떤 역할을 할까?”, “차에도 엔진은 있는데 왜 날지 못할까?” 등의 질문을 받습니다. 엉뚱한 질문으로 인식하지만, 대답을 찾기 위해 학생들은 물리학적 개념을 이용하여 고민하며 기초를 다집니다.
이 단계에서 또 다른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집니다.
“현대의 비행기가 엔진의 동력 없이 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학생은 이 대목에서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대답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비행기들이 무동력 활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깜짝 놀라며, 활공을 길게 하면 할수록 연료 사용량은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나름의 솔루션을 찾습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아래의 도전적 미션을 줍니다.
“비행을 위한 네 가지 힘을 생각하며 먼 거리를 활공할 수 있는 종이비행기를 설계하라. 비행기는 단 한 장의 종이로 만들어야 하고, 풀로 붙이거나 스테이플러로 고정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접어서 완성해야 한다.”
(출처 : Strong Armor http://strongarmor.blogspot.com)
비행기 설계 과정에서 학생들은 각자의 PC를 이용해 종이비행기 디자인을 조사하거나 고안할 수 있고, 할당한 종이 수만큼 다양한 디자인의 종이비행기를 만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개발한 종이비행기의 설계 특징과 기대 효과에 대해 여러 학생과 이야기하고, 비행 실험 후 발견한 성공 혹은 실패 요인에 대해서도 참여 학생들 간 공유하도록 합니다.
학생들에게 통상 종이비행기 설계를 위해 이틀이 주어지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더 많은 시간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이 기간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은 종이비행기 비행 실험에 대한 결과와 개선 방법에 대해 매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데, 이것이 바로 디자인 싱킹 프로세스상의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는 본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구간이고, 학생들 또한 가장 적극적이며 활발하게 참여하는 시간입니다.
Lori 선생님의 종이비행기 프로젝트는 참여한 학생들이 각자 최종적으로 설계하여 만든 종이비행기를 편하게 날리는 공간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종료합니다. 비행 거리나 시간의 측정으로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이 프로젝트의 특징입니다. Lori 선생님은 이 프로젝트가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며, 집 마당이든 학교 운동장이든 공원이든 학생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도록 합니다.
또한 Lori 선생님은 종이비행기가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 각자 측정하되, 친구들과의 상의와 세심한 조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만든 종이비행기를 더 개선할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학생들을 격려합니다.
Lori 선생님은 종이비행기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마다 일반적으로 많이들 알고 있는 전형적인 디자인의 종이비행기 접기만을 고집하며 이 프로젝트 참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일부 학생을 매번 접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친구들의 독창적인 종이비행기가 자신의 것보다 잘 나는 것을 알면 거기서 참여 자체를 중단해 버리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전통적인 디자인의 종이비행기가 최고라는 생각을 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디자인으로 반복해서 접고 비행 결과에 낙담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더 큰 좌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디자인 싱킹 전략이 말하는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전부터 그래왔었다’는 이야기가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시작합니다.
(출처 : vtwctr Blog http://vtwctr.org)
종이비행기 프로젝트는 참가 학생들이 디자인 싱킹 기반의 접근법과 과학적 탐구 과정이 단순히 우리 주변을 관찰, 연구하며 솔루션을 찾아가는 도구적 기법일 뿐만 아니라, 원하는 방향대로 일을 진행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꿈꾸는 과정이라는 것 또한 느끼도록 설계합니다.
놀이와 공부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기존 명제에 대한 참 여부를 흔들고, 오히려 놀이 그 자체가 즐거운 배움이며, 놀이가 보다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학습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종이비행기 프로젝트’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새로운 방향에서 관찰할 때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싱킹 전략을 바탕으로 한 사고와 행동의 흐름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참고자료
- 에듀토피아 http://www.edutopia.org/article/science-takes-flight-paper-airplanes
- Strong Armor http://strongarmor.blogspot.com
- 위키백과 http://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