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존 이야기
‘문제를 해결한다.’ 정말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교육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 ‘5지 선다형, 단답형, 서술형 문제의 정답을 찾는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우리 학생들이 세상 속에서 맞닥트릴 문제에는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습니다. 게다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제 다시, 교육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학생들이 탐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과정을 통해 문제를 찾고, 탐구하고, 정의하며, 해결하게 할까요?
‘산책’이라는 말은 ‘일상’, ‘편안함’ 등의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비시각장애인들에게는 말이죠. 그럼 시각장애인들에게 ‘산책’은 어떤 의미일까요? 필자와 1년 동안 함께 했던 다섯 명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루미너스’ 팀은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한 산책 경험’을 문제로 인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 시각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산책로 정보를 제공하고, 산책로까지 가는 길을 실시간으로 안내해주는 애플리케이션 ‘워크위드(WalkWith)’를 개발 중입니다.
앱 ‘워크위드’는 서울 내 산책로의 길이, 근처 지하철역, 시각장애인 보행 보조시설 설치 정도, 길의 포장재질, 계단의 특성, 산책로 근처 상점 등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또한, 사용자의 위치에서 가까운 산책로와 가까운 지하철에 대한 실시간 도보 내비게이션을 제공하여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산책로로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자주 가는 산책로를 즐겨찾기에 저장하여 쉽게 산책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앱은 대부분 텍스트를 기반으로 되어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은 스마트폰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기능을 통해 이 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시각장애인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앱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산책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산책로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 정보를 팀원들 스스로 수집하기도 하지만, 누구나 산책로 정보를 입력하여 이 프로젝트에 이바지하며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팀의 웹사이트(https://luminouss.kr)를 통해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출처 : 루미너스팀 웹사이트 https://luminouss.kr)
학생들은 자신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과정을 담은 E-Book을 만들어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 안에는 프로젝트 이야기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찾는 산책로인 남산 산책로에 관한 이야기, 산책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E-Book은 지금 교보문고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출처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마치 IT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만,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인 거꾸로캠퍼스 학생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팀이 만든 결과물입니다. 이 친구들이 뚝딱 하고 이 앱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6개월 이상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찾고, 탐구하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6개월 이상 실제 앱과 웹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진로 희망과 연결되는 팀 내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배움의 과정을 밟으며 결과물을 구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 지역사회 기관들이 이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시각장애인에 관한 문제를 찾고 정의할 때 지역사회의 시각장애인 관련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네트워크는 지역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를 통해 연결되었습니다. 전문적인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는 분야의 전문가분들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시각장애인분들을 섭외하여 앱 사용성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이 팀과 비슷한 일을 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컨설팅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의 주도성은 바로 학생들에게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스스로 실행하고,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속 자신들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코칭 교사인 필자의 역할 역시 중요했습니다. 학생들에게 계속 팀의 비전을 제시하고, 학생들 스스로 비전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전체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계속 점검하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방향성을 학생들과 함께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팀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끊임없이 알아보고 섭외하여 연결했습니다.
학생들의 진로 방향을 항상 고려하면서 팀 내에서 어떤 경험을 해야 할지 디자인하는 역할도 코칭 교사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팀원들을 다독이고, 때로는 팀원들에게 모진 피드백을 하며, 팀원들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2015개정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2015개정교육과정에서는 창의적 사고, 의사소통, 심미적 감성, 공동체, 지식정보처리, 자기관리의 6가지 역량을 학생들이 갖춰야 할 역량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다섯 명의 친구들에게 창의 융합형 인재의 핵심역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지 위의 문제를 잘 해결한다고 해서 이 역량들이 길러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진짜 세상 속 문제를 찾아 탐구하고, 정의하고, 해결하며 자연스럽게 이 역량들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가장 크게 성장한 역량은 바로 ‘자기주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학생들은 자기 삶의 주도성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이 그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지금 거꾸로캠퍼스를 졸업했지만, 지금도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앱 개발을 완료하고, 앱스토어에 앱을 출시하여, 실제 사용자들이 이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항상 ‘무엇’이 되어야겠다고만 생각했던 학생들이 점점 ‘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교육부 https://www.moe.go.kr)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위 사례의 프로젝트는 2020년 2월부터 1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시간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온라인으로 전환된 상황이 많은 것을 어렵게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새롭게 할 수 있게 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요인은, ‘학생 주도성’ 그리고 ‘효과적인 협업 도구 사용’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소통과 협업은 높은 책임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스스로 열정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으면 효과적인 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필자가 근무하는 거꾸로캠퍼스에서는 모든 교육과정이 프로젝트 학습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과 수업은 하나의 큰 주제를 중심으로 융합 프로젝트로 이루어집니다. 학생들은 팀별로 큰 주제의 범주 안에서 자신들만의 주제를 찾아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 개인별로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기반을 둔 개인 주제 프로젝트도 진행합니다. 거기에 팀으로 진짜 세상 속 문제를 찾고 정의하고 해결해가는 문제 정의, 문제 해결 프로젝트까지 이루어집니다.
쉽게 생각하면 교육과정 대부분이 프로젝트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프로젝트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성찰하는 사이클이 계속 이루어집니다.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은 목표-계획-실행-성찰의 사이클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자기 주도성을 높여갑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 문화가 학교에 전반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결국, 프로젝트를 통해 높아진 자기주도성은 온라인 수업에서의 능동적 참여로 이어지게 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효과적인 소통과 협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협업도 구가 필요합니다. 언제든 온라인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는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의 내용이 온라인에서도 지속해서, 어려움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로나19가 이어지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온라인 협업 도구가 나왔습니다. 어떤 협업 도구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도구의 문제보다,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가 더 앞서야 할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는 교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자는 Numbers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무제한의 화이트보드 같은 기능을 하고, 많은 종류의 미디어를 쉽게 넣을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참고로 Numbers라는 애플리케이션은 Mac 운영체제와 iOS, iPad OS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온라인 공동작업이 가능하므로 팀원들은 하나의 파일에 동시에 접근하여 함께 협업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만 있다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누적된 기록을 보면서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도형과 글, 이미지, 영상 등 모든 것들을 연결하여 자신들만의 구조화된 프로젝트 지도를 만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줄 수 있는 도구의 사용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프로젝트가 지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학생들과의 1년 동안 프로젝트 경험은 그 자체로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성장, 특히 삶에서의 자기 주도성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프로젝트 학습은 분명 모든 선생님에게 도전입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수업이 만들어가는 학생들의 변화는 더 큰 기쁨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 참고자료
- 루미너스팀 웹사이트 https://luminouss.kr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 교육부 https://www.mo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