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존 이야기
글. 태진미 교수 (숭실대학교 교육대학원 융합영재교육전공)
우연히 보게 된 책들의 제목이다.나란히 놓인 이 책들의 제목이 정말 비정상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것이 참으로 웃프다.
책 제목들처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며 살아간다.
왜 공부하냐고 물으면 “승자독식 구조의 무한 경쟁 시대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으려면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고들 한다.
생성형 AI 시대가 도래하며 사람이 하던 단순 반복 노동 업무는 빠른 속도로 대체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으로 사회적 불안이 높아지며 최근 많은 학생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강한 학습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김현수 외, 2023). ‘창의성 교육’은 강조되지만, 학습 경쟁의 현실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시간은 아이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나다움'이 없는 진로 교육
정부에서도 초중등 교육과정 안에서 진로교육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학생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탐색할 수 있는 진로교육은 시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경기도 교육연구원 교육통계센터, 2022; 교육부, 2023a). 오히려 통계조사 결과는 점점 꿈이 없어지는 학생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정해림, 2023). 그간의 진로교육에 대한 심각한 점검이 필요하다.
아동청소년들이 상담을 의뢰한 건수를 보고한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인관계와 진로 문제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 대학생이나 어른들이 하던 고민을 이제는 초등학생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교육부, 2023b). 이는 진로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사회적 특성을 반영한 진로교육의 보완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불행해지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고 ‘행복한 나’는 ‘나다움’의 실현을 통해 완성된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관심과 흥미, 능력 등 타고난 특성 면에서도 개인차가 있다(태진미 외, 2024). 그 차이는 교육과 진로 선택에서 중요하게 존중되어야 한다(Thomas Armstrong, 2022).
다중지능이론과 진로
전통적으로 지능은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인지능력으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지능은 학교에서 배우는 학습활동과 관계가 깊은 언어, 논리수학적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습활동 외의 다른 능력, 예를 들어 음악, 미술, 신체운동능력 등과 같은 다른 영역은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지능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신체운동능력이 뛰어나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학생이 산만한 학생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고, 음악적 정보를 잘 이해하는 학생의 능력 역시 평가절하되는 사례들도 많았다. 이러한 전통적 지능 이론의 한계를 체감하면서도 별다른 대안이 없었던 교육현장에 하버드 대학의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교수가 밝힌 다중지능이론(1983)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여러 분야에서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인간의 능력이 단일한 지능이 아닌 다양한 능력의 집합체임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보유한 최소 8가지 이상의 지능(언어, 논리수학, 신체운동, 공간, 자연, 음악, 자기성찰, 인간친화)이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상호 교류한다는 의미에서 ‘다중지능이론(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을 피력하였다. 사람마다 보유한 다중지능의 조합은 차이가 있으므로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다중지능 평가가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비판의 시각도 있었지만 그간의 단일지능이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대안지능으로서 다중지능의 긍정적 활용 가능성에 대해 많은 학자들에게 꾸준히 인정받아왔다.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이론(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은 ‘학습자의 잠재적 학습 경로를 파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Branton Shearer & Jessica M Karanian, 2017). 이는 학습자가 자신의 지능 특성을 고려해 학습하고 진로를 선택할 때 더욱 효과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강점지능을 활용해 공부하고 일할 때 성공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김동일 외, 2015). 자신의 강점, 약점지능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공부의 방법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고 진로 선택 후에 직무만족도나 직무효능감, 업무성과도 높일 수 있다.
지능 관련 신경과학적 연구물을 분석한 브랜튼 시어러와 제시카 엠 카라니안(Branton Shearer & Jessica M Karanian, 2017) 역시 모든 사람의 뇌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고하였다. 브랜튼 시어러(2018)는 학생마다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가 바로 ‘배우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차이를 만들게 되며 이는 진로분야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다중지능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적성과 잘 맞는 진로를 선택하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신만의 창의성
‘몰입’이론을 창시한 세계적 석학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교수는 높은 성취를 이룬 창의적 인물들에게 세 가지 핵심적인 특성을 발견했다. 첫째, 자신이 펼칠 분야에 대한 ‘전문성’ 둘째,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창의적 생각습관’ 셋째, 자신이 탐구하는 주제에 대해 깊이 ‘몰입’하는 태도이다. 위와 같은 인물들을 연구한 루트번스타인(Root-Bernstein) 교수 또한 각 인물이 보유한 특성이 저마다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다운 창의성’의 실현을 향해 질주했던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그들은 본인이 가진 본질적 특성은 무시한 채 동일한 방향을 향해 한 줄로 뛰어가는 ‘공부 기계’들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자기다운 삶을 펼쳐가는 과정에서 ‘고유한(Original) 창의적 성취’를 이루어낸 것이다.
여러분 앞에 렘브란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누아르, 고흐, 피카소의 작품이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 보자. 아마도 우리는 어떤 화가의 작품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들은 미술이라는 활동 분야는 같았지만, 자신이 가진 특성과 능력을 활용해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이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그들이 연마한 전문성의 최종 목적지는 단순히 ‘잘 그리는 기능공’이 아닌 렘브란트스럽고 고흐스럽고 피카소스러운 ‘자기다움의 실현’이었던 것이다. 노벨, 에디슨, 마리 퀴리, 아인슈타인 등 과학 분야의 거장들은 어떨까? 그들 역시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관심분야도 달랐다. 당연히 그들이 이룬 창의적 업적도 그들만의 고유한 내용과 빛깔로 발현되었다.
아프리카의 산양 스프링벅(springbuck)은 주로 남아프리카와 남서아프리카의 초원지대에 서식하며 커다란 무리를 이루어 산다. 이러한 집단생활 방식은 포식자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먹이를 찾는 데 큰 도움을 주는 한편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들은 앞서 있던 산양들이 뛰기 시작하면 나머지 수십만 마리가 덩달아 뛰는 현상을 보인다. 어디로 가는지, 왜 뛰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뒤쫓다가 결국에는 절벽에서 모두 떨어져죽고 만다. 최근 고조되는 사회적 불안 속에서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은 어디로, 왜 뛰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현상을 보인다. 명확한 목표와 고민 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는 최근 학부모와 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스프링벅과 같아 보인다. 모쪼록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삶의 방향은 단순히 누군가의 지식을 답습하는 삶이 아닌, ‘나다움’의 실현에 있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참고문헌
- 교육부(2023a). 진로교육 활성화 방안(2023〜2027). 세종: 교육부.
- 교육부(2023b). 2023년 학생 희망직업 조사 결과. 세종: 교육부.
- 경기도교육연구원 교육통계센터(2022). 통계로 보는 오늘의 교육. 2(24), 1-5.
- 김동일, 이윤희, 전호정, 이예슬(2015). 청소년 다중지능 프로그램이 진로 발달에 미치는 효과: 다층메타분석을 통한 효과크기 검증. 아시아교육연구, 16(2), 33-54.
- 김현수, 구소희, 조교금, 최미파, 하상범(2023). 요즘 아이들 학급 집단 심리의 비밀. 교사가 알아야 할 51가지 학급 운영의 지혜. 서울: 비상교육.
- 정해림(2023). 경기신문. 2023년 1.6일자 기사: 점점 꿈이 없어지는 경기 학생들. 실질적 진로교육 지원 절실. https://www.kgnews.co.kr/mobile/article.html?no=732341
- 태진미, 박소연, 김승혁, 박경미, 김정혜(2024). 초등고학년 다중지능 검사 개발 및 타당화. 창의력교육연구, 24(2), 87-105.
- Armstrong, T. (2022). 다중지능과 교육 [김동일 역]. 서울: 학지사. (원본출간년도: 2018)
- Gardner, H. (l983). 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 New York: Basic Books.
- Shearer, B. (2018). Multiple Intelligence in Teaching and Education: Lessons Learned from Neuroscience. Journal of Intelligence, 6(3), 38; https://doi.org/10.3390/jintelligence6030038
- Shearer, B., & Karanian, J. (2017). The neuroscience of intelligence: Empirical support for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 Trends in Neuroscience and education, 6, 211-223; https://doi.org/10.1016/j.tine.2017.02.002